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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잔잔함 속의 따뜻한 유머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라는 한 가지 꿈만 좇던 주인공의 삶에 갑자기 닥친 변화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그동안의 삶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후 겪게 되는 외로움을 극복하며 좀 더 원하는 삶에 다가가는 주인공을 보며 나의 삶도 응원하게 되었다.

 

찬실이는-복도-많지-포스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잔잔함 속의 따뜻한 유머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평범하고 나른한 일상 속에서의 잔잔한 유머이다. 특별히 악한 사람도 없고 성공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소소한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약간의 의외성은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뜻이 있었던 찬실이는 오랫동안 지감독의 프로듀서로 일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지감독이 과음으로 죽는 바람에 영원할 것 같던 삶의 방향이 바뀐다. 영화 외에는 다른 것에 의미 부여를 안 한 지 오래인지라 갑자기 닥친 삶이 낯설기만 하다.

 

찬실이 곁에는 소피라는 절친 배우가 있다. 일단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기에 찬실이는 소피네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피의 불어 과외 선생님인 영이라는 연하남을 만난다. 찬실이와 영은 처음부터 뭔가 통하는 듯 보인다. 둘 다 영화에 남다른 뜻이 있었던 것도 동일하다.

 

 

 

묘하지만 따뜻한 할머니와 장국영

주인공 주변에는 소피와 영외에 세 든 집의 주인 할머니와 장국영이라는 인물도 나타난다. 찬실이가 새로 이사 한 집의 주인 할머니는 무심하면서도 정이 많은 스타일이다. 찬실이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해주기보다는 그녀의 곤란함을 모른척해 줄 수 있는 배려가 있어서 둘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듯하다.

 

할머니는 한글 수업 시간에 숙제로 시 한 편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시 한 줄을 보고 찬실이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모두가 마음 한편에 간직한 바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 영화 속 할머니가 쓴 시

 

그리고 본인 스스로를 장국영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는 찬실이의 삶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물이다. 찬실이가 그동안 애써왔던 영화를 버리지 않고 함께 잘 지내길 바란다. 그래서 찬실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서 살아가길 누구보다 응원한다.

삶과 꿈의 관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조연출을 맡고 이제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영화에 대한 애정도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찬실이가 영과의 대화에서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애정을 피력하는 장면, 오래된 빨간 카세트에 들어있던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녹음된 영화음악 라디오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특히 그 영화음악 프로에 나왔던 정성일 평론가의 목소리, 베를린 천사의 시, 집시의 시간 등의 영화는 어렴풋이 나의 추억도 자극시켰다.

 

찬실이는 꿈에 쫓겨서 사는 게 뭔지 잘 몰랐지만 나는 하루하루 사는 데에 쫓겨서 꿈이 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소중한 사람들이랑 정답게 살면서 꿈도 잊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했다. 꿈만 좇는 것도 삶만 살아내는 것도 돌아보면 모두 허무한 것이니 둘 다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