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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케빈에 대하여, 영원히 알 수 없을 그 무엇

 

케빈에 대하여
케빈에 대하여, 2011

 

 

영화 '캐빈에 대하여'를 보기 전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이 영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였지요. 자신의 아이가 끔찍한 가해자가 된 것을 엄마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영화라니 그 콘셉트만으로도 생각이 많아져서 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영화를 보고 나니 이렇다 할 결론을 낼 수도 없고 뭔가 더 알아낸 것도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케빈에 대하여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감독 : 린 램지
주연 : 틸다 스윈튼(에바 역), 에즈라 밀러(케빈 역)

개봉 : 2012.07.26
장르 : 스릴러
국가 : 영국, 미국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 112분

 

붉은색으로 연결되는 과거와 현재

영화 '캐빈에 대하여'의 시작은 붉은색입니다. 붉은색의 토마토축제, 에바가 혼자 사는 집에 칠해진 붉은색 페인트 등이 대표적이지요. 그리고 섬뜩한 효과음과 상황과 맞지 않는 명랑한 음악들이 내내 기괴한 느낌을 줍니다. 첫 장면은 에바가 결혼하기 전에 토마토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과 함께 그녀에게 욕설을 퍼붓는 어떤 목소리들이 나옵니다.

 

영화는 수시로 현재와 에바의 회상을 번갈아 보여줍니다. 곧이어 현재의 그녀는 작은 여행사에 면접을 보기 위해 기다리면서도 과거의 어떤 일을 회상합니다. 에바는 다행히 작은 여행사의 단순 사무원으로 취직이 되어 미소를 띠고 거리에 나옵니다. 그것을 본 어떤 여자가 그녀의 뺨을 세게 때리고 욕을 하며 지나가지요. 에바가 대량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봐서 바로 이해가 되었지만 아무 정보 없이 보게 되었다면 혼동이 되었을 듯합니다.

 

에바는 슬픈 얼굴로 운전을 하며 어디론가 갑니다.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회상은 계속되는데요. 정확히 이해할 순 없지만 어떤 결과에 대해서 되돌리고 싶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커서 그러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회상은 딱히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에바가 현재 주어진 일을 하면서 회상을 하는 듯 단편적으로 나타납니다. 영화의 초반부까지 보면 에바는 준비가 되지 않았던 상태에서 우연히 임신을 하게 되는 걸로 보이는데요. 이걸로 그녀가 모성애가 처음부터 부족했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준비를 하고 엄마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요.

 

 

 

 

 

케빈과 에바

에바의 아기, 케빈은 갓난아기 때부터 울음도 잘 그치지 않고 재우기도 힘든 까다로운 성격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처음 아기를 키우는 에바는 여느 엄마들처럼 당황하고 힘들어하지요. 물론 그러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훌륭한 엄마도 있지만 에바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그녀가 케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될까 싶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케빈을 보면 힘든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죄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세상에 반박을 하기도 힘든 건 사실입니다.

 

케빈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아이는 영화 내내 그녀에게 복수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야 마땅한 엄마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당연한 응징을 하듯이 에바를 심하게 괴롭힙니다. 원래는 할 수 있는 것인데도 그녀를 끝까지 괴롭히고 나서야 수행하는 등의 행동을 하고 엄마를 쉴 새 없이 조종하려고 들지요. 그런데 그러한 극도의 미움이 사랑 없이 가능한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케빈의 유년 시절의 입은 뭔가 자연스럽지 않은데요. 화가 나 있다기보다는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모양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케빈이 사이코 패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린 성격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기로서는 절대 존재인 엄마의 부족한 사랑을 느꼈다고 해도 모두 다 그렇게 큰 상처를 받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케빈이 동생이 태어났을 때 심술을 부리는 모습은 여느 아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길가에서 엄마의 책 표지 사진을 혼자 바라보는 모습은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케빈도 무엇인가 말할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에바의 눈에 비친 모습이 전부입니다. 사실 케빈에게 어떤 설명을 듣더라도 그의 악행은 엄마로서도 절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긴 하지만요. 그래도 만약 케빈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만큼 변화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얘기도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에바가 힘을 내길

영화 '캐빈에 대하여'는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끔찍한 장면이 화면 속에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괴한 음향효과, 밝은 노래마저 공포스럽게 만드는 연출, 상징적인 이미지와 색상 등으로 인해서 초반부터 초긴장 상태로 영화를 감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린 램지 감독의 영화는 이 전에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먼저 보았는데요. 단편적인 편집과 모순되는 음악 등으로 관객을 주인공의 고뇌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부분은 비슷하나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슬픔이란 감정이 느껴졌었는데 영화 '캐빈에 대하여'는 감동이나 감정보다는 혼란과 물음만 가득 남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바, 케빈에 대한 어떤 평가도 할 수 없고 어떤 바람도 할 수 없었는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에바의 입장에 조금은 마음이 더 가기에 어딘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엄마가 있다면 조금 더 힘을 내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