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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초속 5센티미터 - 서정적인 시간과 기억

초속 5센티미터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실 요즘 같은 시대의 쿨한 정서랑은 거리가 꽤 멀어서 어떤 면에서는 공감이 전혀 안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한없이 공감이 되기도 한다.

 

초속-5센티미터-포스터-눈-내리는-밤-풍경
초속-5센티미터

 

서정적인 시간과 기억

초속 5센티미터는 작품 속에서 벚꽃이 바람에 의해 떨어지는 속도를 나타낸다. 제목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애니메이션은 시종일관 서정적이기 그지없다. 초등학생인 두 주인공이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눈에 비유하는 장면, 길고양이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들은 보면서도 꿈처럼 아련하게 느껴진다.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모든 게 아련하고 그립기만 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 아련함이 너무 그리워서 한참 그 세계에 빠져있을 때가 있다. 주인공처럼 그때의 그 감정이 가슴속 한편에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떠올리면 아련하고 쓰라린 느낌이다. 특별히 슬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왠지 마음이 아프다.

 

그때 고마웠던 기억, 외로웠던 기억, 전하지 못했던 말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함들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마음이 뭉클해진다. 어쩌다 보니 현실을 살고 있긴 한데 대체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하는 풀 수 없는 의문이 생기면 답답해지기도 한다. 시간은 어쩔 수 없이 흘러가고 그에 따라 지난 인연과 기억이 남지만 왠지 그때그때 다 해결하지 못한 느낌이 들어 현재까지 아련해지는 것 같다.

 

벚꽃이-핀-골목-풍경
벚꽃이-핀-골목-풍경

주인공 타카키는 초등학생의 첫사랑이었던 아카리에 대한 어린 시절의 그 감정을 잊지 못하는 인물이다. 아카리 자체를 그리워한다기보다는 그녀와 경험했던 특별했던 자신의 그 감정에 매료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점차 나이가 들어도 그때의 그 감정보다 더 특별한 그 무엇인가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자신의 감정에 확신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지금은 잘 못 느끼지만 지나고 보면 현재의 만남이나 시간들도 특별해지는 것 아닐까.

돌-무늬-바닥
돌-무늬-바닥-풍경

초속 5센티미터는 영상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보다 보면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스토리 자체의 전개는 잊어버리고 만다. 두 주인공이 왜 영영 못 만나나 등의 설명 자체가 나오지 않더라도 나의 삶이 그런 것처럼 설명할 수 없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두 주인공이 화면에 직접적으로 등장할 때보다는 주변의 풍경들이 나타날 때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특히 강조된 빛의 표현은 눈을 떼지 못하게 했고 현실에서는 복잡해 보이고 지저분해 보일 수 있는 도시의 모습들이 아름다운 명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찻길-건널목-풍경
전철-건널목-풍경

초속 5센티미터는 총 한 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타카키의 초등학생 시절, 청소년기 시절, 성인 시절이 모두 나오는데 아카리는 성인 시절에도 잠깐 등장한다. 둘은 초등학교 시절 벚꽃과 관련된 추억이 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벚꽃을 매개로 만나게 된다. 사실 결과적으로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 화면에 순간적으로 스치게 된다. 그리고 여운이 긴 엔딩이 나오기 전에 뮤직비디오처럼 흘러나오는 노래는 초속 5센티미터의 정서와 너무 일치해서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