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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파워 오브 도그 - 서늘하고 아이러니한 매력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요란한 표현은 없지만 2시간 동안 빈틈없는 매력을 꽉 채워서 보여주고 있다. 정체성의 혼란을 안고 사는 필 버뱅크라는 인물을 통해서 통념적인 역할의 강요가 쓸데없고 어리석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파워-오브-도그-포스터-주인공-필이-말을-타고-있음
파워-오브-도그

영화 파워 오브 도그의 가장 큰 매력은 촘촘하게 짜인 연출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을 감상하게 된 것 같다. 이 영화의 감독인 제인 캠피온은 뉴질랜드의 여성 감독으로 그녀의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피아노이다. 그 작품에서 두 모녀와 그들을 겉으로 괴롭히는 남성이 얼핏 생각나는데 그 모티브는 비슷하지만 파워 오브 도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나아간다.

파워 오브 도그의 또 다른 매력은 기묘하고 아이러니한 필 버뱅크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에 있다. 그는 마초적인 포스를 풍기는 필의 역에 몰입하기 위해 실제로 2주간 씻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필 버뱅크는 영화 속 인물임에도 보는 내내 강력한 존재감으로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내 옆에 실제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의 무분별한 거친 언행과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필이 뭔가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을 느끼며 보게 되었다.

필은 함께 농장을 운영하는 동생 조지에게 강한 집착을 보인다. 조지를 돼지라고 놀리고 조롱하면서도 늘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조지가 늦게 들어오면 혼자 밴조를 연주하며 기다리는 모습에서는 의외의 섬세함도 보여준다. 또한 큰 집에서 두 형제가 한 침대에서 자는 모습도 낯설고 기괴하게 느껴졌다.

 


두 형제는 목장의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동네의 식당에서 파티를 하게 된다. 식당의 주인인 로즈는 남편이 자살한 후 혼자 피터라는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필은 여성스럽고 나약해 보이는 피터를 못 마땅해하며 조롱한다. 피터가 식당의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꽃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꽃을 보란 듯이 태우기까지 한다.

필이 아들을 놀림거리로 삼자 로즈는 울어 버리는데 조지는 그 모습에 연민과 사랑을 느낀다. 곧 조지는 로즈와 결혼해 버리고 필은 깊은 분노를 느낀다. 한 집에 살게 된 필과 로즈는 본격적인 신경전을 벌인다. 사실 신경전이라기보다는 필의 이상 야릇한 괴롭힘이다. 그 괴롭힘은 거의 대부분 몰래 숨어서 로즈를 불안하게 만들거나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 심리적인 괴롭힘에 사로잡힌 로즈는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의대에 입학하여 기숙사에서 지내던 피터가 농장으로 돌아온다. 피터는 엄마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버린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듯 하나 겉으로는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다 보면 피터의 냉정함과 침착함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필은 브롱코 헨리와 관계된 자신만의 비밀 장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피터에게 들키는데 그 후 둘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해간다. 아마도 필의 우상이었던 브롱코 헨리는 연인이기도 했던 것 같다. 또한 필은 피터가 목장 앞의 산에서 개의 모습을 바로 발견하는 것을 보고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된다. 둘은 점점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가고 필은 피터를 신뢰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다 보면 모든 것이 피터의 침착한 계획이었고 필은 너무 쉽게 희생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대조되는 필과 피터의 모습을 비교하게 된다. 필은 내면의 섬세함과 여린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강하고 거친 남성성을 만들어 냈다. 반면 피터는 겉으로는 여성스럽고 약해 보이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강하고 냉정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카우보이는 보통 마초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내면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필과 같은 캐릭터는 영화 전체를 아이러니한 분위기로 이끌었다. 영화가 끝나고서야 되짚어 보게 되는 피터의 묘한 눈빛과 행동들은 굉장히 서늘한 느낌을 주었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서늘하고 매력적이고 아이러니하고 드러나지 않은 로맨스도 있는 다방면에서 나의 감각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