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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매혹적인 영화 캐롤, 잔잔하지만 숨막히는 설렘

캐롤
캐롤, 2015

 

 

대조되는 사랑의 모습들

영화 '캐롤'은 굉장히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절제된 표현 속에 숨 막힐 듯 끌리는 감정이 느껴지는 영화인데요. '캐롤'을 보면서 나도 이런 사랑을 원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급급한 자기중심적인 사랑 말고 서서히 이게 무슨 감정일까 하며 키워나갈 수 있는 관계입니다.

 

 

 

 

 

 

 

영화 ' 캐롤' 속에서는 두 주인공의 사랑과 각자의 남편, 남자 친구와의 사랑이 대조적으로 보입니다. 먼저 테레즈의 남자 친구 리처드는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지만 정작 그녀가 좋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에게 예쁘다,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는 계속 테레즈에게 유럽여행을 가자고 얘기하며 그녀가 카메라에 관심 갖는 것에는 대놓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또한 캐롤과 그녀의 남편 하지와의 관계도 일방적으로 보입니다. 영화에서는 이미 망가진 관계로 이혼 소송 중인 것으로 나오는데요. 그동안 철저히 남편 중심적으로 전개된 결혼 생활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캐롤의 모습이 중간중간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지는 캐롤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둘의 관계가 왜 파탄이 났는지, 캐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전혀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 전달할 뿐입니다.

 

갑자기 다가온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뉴욕으로 인트로가 인상적인데요. 잔잔한 음악과 함께 처음에는 쇠창살 문양처럼 보였던 하수구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의 발, 다리, 얼굴로 시선이 점점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영화 속에서는 아마도 카페로 향하는 테레즈의 친구 잭의 시선인가 싶기도 한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뭔지 모를 인생과 자신과 사랑의 불확실성으로 고개를 숙이고 살던 사람이 고개를 들어 점점 명확하게 앞을 보게 되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남자, 즉 잭이 뉴욕의 밤거리를 걸어서 카페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테레즈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테레즈 앞에 앉아 있는 금발의 우아해 보이는 여자는 캐롤인데요. 캐롤은 자리를 뜨고 테레즈는 우연히 만난 잭과 함께 친구들의 파티에 가는 차에 동행합니다. 그러면서 테레즈의 회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테레즈는 프랑켄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직원입니다. 그녀는 딸 린디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온 캐롤을 처음 본 순간 왠지 시선을 거두기가 힘들어 보입니다. 다른 손님의 물음에 시선을 놓친 후 사라진 캐롤이 어느새 그녀에게 다가와 있습니다. 캐롤은 딸에게 줄 인형을 사고 싶다고 하지만 이미 품절이라 테레즈는 기차 장난감을 추천하고 그녀의 배송 주소를 메모해 놓습니다. 그리고 곧 캐롤이 놓고 간 장갑을 발견한 테레즈는 그것을 우편으로 보내줍니다.

 

장갑을 전해받은 캐롤은 감사의 표시로 식사대접을 하고 크리스마스 전날 자신의 집으로 테레즈를 초대합니다. 테레즈가 캐롤을 바라보는 시선은 황홀함이 아닐까 싶었는데요. 뭔지 모르지만 계속 쳐다보게 되고 거부할 수 없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가다가 트리를 사러 잠깐 내린 캐롤을 카메라에 담는 테레즈의 모습은 수줍음과 열정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하지만 캐롤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방문하면서 테레즈는 두 부부의 불화를 목격하게 됩니다. 캐롤의 남편은 테레즈에게 화풀이라도 하듯이 그녀를 의심하는 말을 하는데요. 결국 테레즈는 기대와는 달리 우울한 마음으로 캐롤의 집을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캐롤의 사과 전화를 받고 다음날 만나기로 합니다. 둘은 다음날 테레즈의 집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때 캐롤은 테레즈에게 최신형 캐논 카메라를 선물합니다. 테레즈가 사진작가가 꿈이라고 얘기했던 것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캐롤이 딸의 접근 금지 명령에 힘들어하자 테레즈는 도울 수 없는 자신에 대해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표현하는데요. 아마도 이미 테레즈의 마음속에서 캐롤은 특별한 존재였던 듯합니다. 그리고 둘은 캐롤의 제안으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여행을 하면서 둘은 비로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데요. 안타깝게도 캐롤의 남편이 보낸 남자에 의해 둘의 관계는 도청이 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캐롤은 딸의 양육권을 뺏길 위기를 맞게 되고 린디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테레즈가 잠들어 있는 새벽에 이별 편지만 남겨놓고 떠납니다.

 

 

둘이 헤어져 있던 기간 동안 테레즈는 타임스에 취직해서 사진 기자가 되고 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삶을 펼쳐나가는 듯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캐롤은 테레즈에게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고 그 만남의 장면이 이 영화의 처음이었는데요. 캐롤은 이혼을 하고 이사하여 넓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며 테레즈에게 함께 살 것을 권유합니다. 하지만 테레즈는 바로 거절하고 친구들이 있는 파티에 참석합니다.

 

아마도 테레즈는 캐롤과의 강렬한 사랑에 큰 상처를 입고 두려움이 있어서 이젠 현실적인 선택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지 않았나 싶은데요. 아직도 캐롤 앞에서 자신이 설렐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 자리에 나간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테레즈는 캐롤 앞에서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자신을 깨닫게 되고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테레즈에게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우아한 캐롤을 향해 걸어가면서 영화는 마무리가 됩니다. 이때 테레즈를 맞이하는 캐롤의 눈빛과 표정은 전율을 느낄 만큼 매혹적이어서 이보다 더 완벽한 엔딩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이끌림에 대한 매혹적인 사랑 영화

영화 '캐롤'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 소설인 '소금의 값'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자신이 겪은 일을 모티브로 소설을 썼는데요. 1950년대에 쓰인 이 소설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상 필명으로 출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에 대한 설명이 더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영화는 특별한 사건도 많은 대사도 없이 두 배우의 분위기, 눈빛이 모든 걸 담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1950년대의 분위기, 의상, 색감 등을 나타내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이 되었겠지만 여신 같은 케이트 블란쳇과 수줍은 듯 열정을 숨기고 있는 듯한 루니 마라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그리고 테레즈의 시선에 따라 캐롤을 감상하게 되었는데요.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어떻게 있을까 하는 테레즈의 벅찬 설렘이 느껴져서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보면 특별한 관계이지만 그 형식보다는 그 둘의 서로를 향한 감정이 훨씬 더 특별하고 품위 있게 다가오는 매력적인 사랑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캐롤 / Carol, 2015

개봉 : 2016.02.04
재개봉 : 2021.01.27
장르 : 드라마
국가 : 영국, 미국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 118분

감독 : 토드 헤인즈 Todd Haynes
주연 : 케이트 블란쳇 Cate Blanchett(캐롤 역), 루니 마라 Rooney Mara(테레즈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