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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F. 스콧 피츠제럴드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주)민음사

 

F.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 중 하나인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을 e북으로 읽었다. 이 소설을 모티브로 제작된 브래드 피트 주연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다가 갑자기 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던 그의 단편집이 생각이 나서 찾아봤는데 종이책은 주문이 안 되는 것 같고 e북이 보였는데 결제 금액이 천원도 안되어서 부담 없이 구매해서 읽었다.

 

 

나는 노인으로 태어나서 아기로 죽어가는 벤저민의 이야기를 영화가 나오기 한참 전에 소설로 읽었는데 소설과 영화는 무드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이야기의 소재는 같지만 영화는 로맨틱한 느낌이 있는 데에 반해 소설은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 이 소설의 심오하면서도 짠하면서도 씁쓸한 유머가 마음에 든다. 또한 피츠제럴드도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는 것으로 평했다고 한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1896년생으로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재즈시대를 대변하는 '위대한 개츠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그에 따르는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그 시대의 분위기 탓인지 명성을 얻고 돈을 많이 벌게 되면서 사치와 유흥에 빠지고 결국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44세인 1940년에 사망한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주)민음사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출생과 유년시절

 

1860년 어느 여름날 로저 버튼 부부는 그 시기에 시대를 앞서서 볼티모어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다. 하지만 버튼 씨가 그의 아기를 처음 보러 가는 중에 만나는 의사, 간호사들은 그에게 몹시 불쾌해하며 화를 냈다. 그리고 드디어 그에게 아이가 공개되었을 때 만난 그의 아들은 수염이 허리까지 자란 백발의 노인으로 커다란 담요에 쌓여 아기침대에 다리를 내놓고 앉아 있었다. 놀랍게도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생아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고 이런저런 불평과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처음엔 다른 사람들처럼 절대로 노인으로 태어난 아기를 받아들일 것 같지 않던 그의 부모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까지 하게 된다.

벤저민이 아직 어린것 같아


아직 할아버지의 모습인 5살 때 유치원을 그만두게 되면서 한 말인데 아이가 아무리 기이하게 태어났어도 부모에겐 똑같은 자식이란 것이 느껴져서 웃음이 나면서도 짠한 대목이었다. 이렇게 나의 처음 염려와는 달리 벤저민의 부모는 그들보다 더 늙은 아들을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여기며(혹은 정상이라고 믿고 싶어 하며) 최대한 정상적으로 키워내려고 노력한다.

 

 

 

 

거꾸로 가는 벤저민의 시간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평생을 노인의 모습으로 살게 될 거라고 예상했던 벤저민은 자신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름은 점점 옅어지고 머리카락은 점점 짙어지며 목소리, 걸음걸이에도 힘이 생긴다. 내가 생각했을 때 벤저민의 거꾸로 가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 오십 대의 모습을 한 열두 살에서 스무 살 시절인 것 같다. 비록 열여덞 살 때 예일대학교에 합격하고도 오십 대의 모습을 한 미치광이로 오해받아서 입학은 포기하는 사건이 생기긴 하지만 말이다. 

 

벤저민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쉰 살이 된 아버지 로저 버튼과 형제 같은 모습으로 사교계에 다니기 시작하는데 그때 첫사랑이면서도 마지막 사랑인 힐더가드를 만나게 된다. 오십 대의 모습을 한 벤저민 군과 정상적인 이십 대의 아름다운 소녀 힐더가드 양은 주변의 방해에도 결혼을 하게 되고 한동안은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힐더가드는 정상적으로 늙어가는 데에 반해 벤저민은 비정상적으로 젊어지고 있으니 둘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벤저민은 힐더가드가 있는 집에 점점 더 매력을 잃고 활기찬 생활을 위해 군대에 입대하여 흥미진진한 군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역하여 서른 살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처음엔 당황했으나 어쩔 수 없이 20대까진 자신의 젊은 외모를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한다.

 

그렇게 점점 더 젊어지던 벤저민은 스무 살로 보이는 쉰 살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풋볼 경기에서 크게 활약하여 라이벌인 예일 대학교에 복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꾸로 가는 그의 인생에서의 행복은 여기까지인지 몸은 점점 더 작아지고 생각까지 몸에 맞춰서 어려진다. 결국 벤저민은 그의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 로스코의 돌봄을 받는 생활을 하다가 아기의 몸으로 돌아가 죽게 되는데 이 시기는 할아버지의 몸을 한 어린 시절보다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진짜 인생은 무엇일까

 

피츠제럴드의 단편 작품인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을 처음 읽었을 때는 뭐 이런 생소한 이야기가 있나 싶었는데 몇 번 읽어서인지 이젠 그냥 누군가의 일생을 읽는 느낌이 든다. 나도 그의 부모처럼 처음엔 기이했던 벤저민의 상황이 익숙해졌나 보다. 벤저민의 인생은 마지막부터 시작이 되기에 그는 중간중간 희망의 싹만 보여도 이제 내 인생이 시작하는구나 하며 열의를 보이지만 시간은 특별한 악의 없이 그냥 똑같이 흘러가기에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를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도 각자 나름대로 특별한 일생을 보내고 있지만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기에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무심한 인생에서 무엇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