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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새의 선물] 은희경 장편소설 _ 문학동네

새의선물
새의 선물 _은희경 _ 문학동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나는 나를 본다

 

나는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가끔 읽는데 매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는다. 소설이 워낙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읽고 있으면 내가 진희가 되진 않더라도 그 세계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있는 것이 그 세계에 들어가 살고 나온 것처럼 전환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가끔 현실이 복잡하거나 노답일 때는 '새의 선물'을 읽으면 리프레쉬되는 듯하기도 하다.

 

소설 '새의 선물'에서 화자는 12살 진희이지만 38살이 된 그녀가 어린 시절 자신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그런지 12살 소녀의 생각이나 행동은 순수하다 느껴지는 부분은 거의 없고 자연스레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지는 않다. 사람마다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진희는 위기 상황에서 보이는 '나'를 두고 진짜의 '나'가 바라보는 방식을 택한다.

 

나로서는 그게 가능한 일일까 싶은데 소설 '새의 선물' 안에서의 똑똑한 화자는 그러기로 마음먹은 후로는 진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락한 환경에 놓여있지 않아서 '작위'의 형태로 자신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다. 그런데 진희는 스스로를 연민하는 법도 없기에 타인이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도 싫어하는 것 같다. 

 

나는 감정을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타인에게 들키는 스타일이라 바라보는 '나'를 분리해서 정리를 할 시간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기에 진희를 보면서 초인의 경지에 이른, 나와는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 이질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상황을 분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화자를 만나서 그 주변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책만 읽어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희 주변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는데 냉소적으로 얘기하는 것 같다가도 애정을 가지고 서술하는 부분들도 사실은 많다. 죽은 엄마를 대신해서 자기를 키워주는 할머니는 당연할 것이고 온갖 허점 투성이이고 때론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던 이모도 그러하다. 진희의 관점에서 보이는 모습을 말해 주는 것이기에 그녀의 마음도 사실 드러날 텐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광진 테라 아줌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마음을 헤아려 보다가 자신의 것에 대입시켜 본인이 원하는 삶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그 장면에서 진희는 '엄마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또 아버지라는 발음을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는 문장을 말하는데 그 부분에서 그녀의 삶을 대하는 방식이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똑똑하고 분석적인 진희도 첫사랑에서 만큼은 허점을 드러내는데 삼촌의 친구이자 이모를 좋아하는 '허석'이 나타났을 때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허상'을 깨닫고 더욱더 성숙해진 자신과 어느새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이모의 변화를 발견한다.

 

 

 

새의선물
새의 선물 _은희경 _ 문학동네

 

 

슬픔 속의 단맛에 길들여지기

 

'새의 선물' 은 목차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워낙 화자가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그들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깊이 있게 파고들기 때문에 소제목들도 의미심장하기 그지없어서 한참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독 '슬픔 속의 단맛에 길들여지기'란 목차가 와닿았는데 그 챕터의 내용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소제목 자체가 내가 느낀 이 소설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고통은 행복보다는 삶이랑 더 친하니까 그 슬픔을 나도 진희처럼 대비하고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자신도 타인도 거리를 두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게 어찌 보면 정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자신의 슬픔에만 빠져 있지 않고 상대의 고통도 인식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괜찮은 삶의 태도인 것 같다.